2012.08.22
* 쿠로코 성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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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앙!
"…쿠로콧치!!"
응급실의 문이 난폭하게 열렸다. 환자의 안정을 위한 에티켓을 깡그리 무시한 행동이었다. 문을 열어젖힌 남성이 잘생기지만 않았어도 접수처 간호사가 신경질 적인 목소리를 꽥 내질렀으리라.
남자는 흐트러진 금발을 쓸어 올릴 새도 없이 불안으로 흔들리는 눈동자가 응급실을 훑었다. 막 스치는 간호사를 잡아 원하는 곳 근처에 갔을 때야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평소 익숙하던 옅은 존재감이 이렇게나 불안할 수 없었다. 긴 다리가 성큼성큼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침대와 침대 사이를 가리는 커튼을 젖히자, 담담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소녀가 보였다.
그 담담한 표정에 남자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파리한 손을 잡아 쥐었다.
"쿠로콧치…”
"쓸데없이 울지 말아주세요. 죽은 것도 아닌데 이런 곳에서 곡소리는 사양입니다."
"너무해.."
남자, 키세 료타는 상대의 면박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도 내심 안도한 듯 응어리 졌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커텐 고리가 차르륵 소리를 냄과 동시에 한 의사가 공간에 발을 내딛었다.
"쿠로코 씨, 정신이 드세요? 아. 옆의 분은 보호자?"
의사는 차트를 든 채 볼펜을 쥐고 물었다. 키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키ㅅ.."
"아뇨. 동창이에요."
"쿠로콧치!"
그런 말을 막은 건 환자 본인이었다. 키세는 드물게 으르렁거리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의사는 묘한 기류에 고개를 기울이면서도 경쾌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동창입니다."
그녀는 고집스레 말했다. 의사의 시선이 키세를 향했다.
"..보호자입니다."
그 또한 고집스러웠다. 의사는 둘의 의견을 절충하기로 했다.
"그럼 임시 보호자로 하죠. 나중에 진짜 보호자가 오면 인수인계 하는 쪽으로. 정확한 게 아니라 약물 투여도 못하는 중이고, 여기서 잠깐 쉬고 있으세요."
의사는 차트에 무어라 적곤 그대로 커튼 밖으로 나가버렸다. 적당히 어두운 사각형의 공간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막상 둘만 남으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꼬리가 축 처진다.
쿠로코는 한숨을 쉬었다. 본능적인 감으로는 의사의 말을 깨달은 지 오래다. 응급실에 실려온 여성에게 약물을 투여하지 못 할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키세 군."
"…왜, 쿠로콧치는 '쿠로코'를 쓰는 겁니까?"
"그게 제 이름이니까요."
"쿠로콧치의 이름은 그게 아니잖아요. 쿠로콧치는 이제, ㅋ."
"그만."
"쿠로콧치!"
"키세 군은 키세 료타이고, 난 쿠로코 테츠야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에요."
"…어째서죠?"
슬프게 내리깐 시선에, 쿠로코는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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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코 중학 시절, 그녀는 그를 만났다. 그는 간단히 말해 한 마리 대형견이었다. 그런 그와 이런 저런 인연이 쌓였고, 타인이 봤을 때 연인이라는 직함도 가졌다. 하지만 그는 좀 더 하나뿐인 호칭을 원했고, 결국 그에 못이겨 동거를 시작했다. 그렇게 삼년이 지났다.
즉, 키세 료타와 쿠로코 테츠야는 사실혼이다.
어디까지나 마음으로 묶여, 언제든 떨어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관계다.
유명한 모델에게 스캔들은 치명적이다. 그것은 스포츠 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때문에 쿠로코는 백보 양보해 키세를 저의 보호자로 인정한다 쳐도, 그 위의 것은 인정해줄 수 없었다.
자신은 그림자다. 그림자란 빛을 더 빛나게 해야하는 존재다. 그런 존재가 빛의 걸림돌이 된다니, 어불성설이다.
이번만큼은 스스로 이겨내야만 한다.
쿠로코는 그렇게 다짐했다.